재수는 노량진에서 했다. 
이승만 박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란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래도 재수 생활 동안 친구들과 뭉쳐다니면 부모님께 죽을 같았다. 아니 죽지는 않더라도 삼수는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름까지는 혼자서 학원에 가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독서실에 갔다.
 
하지만 그 생활을 몇개월 동안 지속했더니 과연 심심해졌다. 심심해져 죽을것만 같았다. 새삼 이승만 박사의 탁견이 감탄스러웠다. 그래서 결국 재수하는 친구들과 뭉쳐다니기 시작했다. 고3때 같은 반 아이를 주축으로 학교는 같지만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친구들과 재수생의 비애와 눈물을 함께 나누었다. 그냥 나누면 멋쩍으니까 술을 마시며 마누었다. 그 생활을 또 몇달하니 이번엔 나의 초심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재수생끼리 뭉치면 성적이 좆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체험으로 얻은 진리만큼 소중한 것은 없는 법,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되었다라고 자위하기엔 시기가 너무 늦어버린 상태였다. 수능이 코앞이었다.
 
그날도 오후에 있는 수업을 대충 땡땡이치고 소중한 재수생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로 모의하였다. 어쩌면 내년에 또 봐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이었다. 소중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넷은 지겨운 노량진을 벗어나 청춘과 대학생의 거리 신촌으로 가기로 했다. 여대생을 질리도록 볼수 있다는 장점외에 지리상으로 노량진에서 그리 멀지 않아 간단하게 한잔하고 저녁 늦게 있는 특강을 듣기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물론 간단하게 한잔하기로 한 술자리가 정말 간단하게 끝난적은 단한번도 없었지만, 일단 그런 생각을 한다는거 자체가 기특했다. 재수생으로서의 본분마저 잊은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능이 한달 남은 상태였다.-
 
자격지심이란 외부에서 내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외부로 퍼져나오는 감정이다. 가슴속에 언제나 낙오자란 응어리를 품고 사는 우리들이 발랄, 유쾌하기 짝이 없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보니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씨발 우리도 내년엔 옆에 대학생 기집애 하나씩 끼고 여기와서 당당하게 술한잔하는거야!! 
 
우리는 재수생 무리 가운데서도 상당히 무능한 축에 속했기에 누구한테도 여자 친구 같은 건 없었다. 유일한 취미가 강의실 맨뒤에 앉아 이쁜 여자 아이들 품평회 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언감생신 '대학생 기집애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신다는 상상만으로도 그저 흐뭇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만 대학생 기집애를 연신 되내이는 K가 의외로 일찍 취해버린 거 같아 걱정이 되었다. 저녁때 특강 들어가야 되는데... 이제 한달 남았는데...
 
돌아오는 지하철 역에서 K는 끊임없이 대학생 욕을 하고 있었다. 건방지다느니... 세상을 모른다느니... 그러더니 흔들리는 국철탓에 취기가 올라오는지 연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두명이 옆에서 부축을 하고 남은 나는 친구들의 가방을 들어 주었다. 혹시나 오바이트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그정도로 취한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오바이트를 못하니 욕이라도 해야겠는지 연신 험한 욕을 중얼거리는것이 안되어 보였을 뿐이다.
 
그렇게 걱정과 불안으로 K를 바라보다 노량진역이 가까이 왔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량진 역 벤치에 잠시 앉혀서 커피 한잔 먹이고 집에 보내자. 그리고 특강 들어가면 되겠지. 속으로 향후 일정을 계획하였다. 어지간히 대학은 가고 싶었나 보다. 그러려면 진작에 이승만 박사보다 나 자신을 신뢰했어야 했다. 4.19가 괜히 일어났겠는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드디어 노량진 역에 들어서자 덜컹거리던 국철은 그 진동이 잦아들면서 서서히 플랫홈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이번 내리실 역은 노량진, 노량진 역입니다...' 하는 안내 멘트와 함께 국철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빨리 커피를 마시게 해야된다는 생각에 나의 시선은 어느새 커피 자판기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때 방금전까지 패잔병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K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고개를 번쩍들더니 차내가 떠나가라 승객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야이 씨발~ 재수생 아닌 것들은 아무도 내리지마!!!
 
다들 깜짝 놀랐다. 나도 물론 놀랐다. 너무 구닥다리 표현인지 모르지만, 순간 시간이 멈춘것만 같았다. 녀석은 취중에 '신촌이 대학생들의 성지라면 노량진은 재수생들의 성지'임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그 발현이 엄한 승객들을 상대로한 개꼬장이라면 그건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쪽팔린 일 아닌가! 산더미같은 가방을 매고 노량진 역에 내리는 청년중 재수생 아닌자가 어디있을까만은 그래도 이렇듯 선언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재수생이 벼슬인가?
 
승객들 모두 놀라서 K만 쳐다볼 뿐이었다. 우리들도 당황해서 그저 멍하니 K를 바라볼 뿐이었다. K는 자신의 명령대로 그 누구 하나 내릴 엄두도 못내고 있자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사람들을 향해 히죽 한번 웃어보이고는 천천히 플랫홈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축을 하고 있던 친구들도 그에게 이끌려 엉겹결에 같이 국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서서히 국철의 문이 닫혔다. 유리 너머로 K와 친구 두명이 보였다. 그렇다. 나는 남은 것이다. 당황한 나는 내리는 K와 친구들만 멍하니 바라보다 국철에 남아버린 것이다. 방금 소리 지르고 내린 미친놈의 친구임을 입증하듯, 어깨에 산더미 같은 가방을 몇개나 맨채 국철 안에 홀로 남아버린 것이다.
 
- 재수생이면 공부나 할 것이지 어디서 술 처먹고 지랄이야...
 
- 아이 씨 아까 내렸어야 했는데...
 
여기 저기서 승객들의 불만이 들려왔다. 너무나 창피했다. 덩달아 '공중도덕이란 것도 모르나 저 청년은...' 하고 K의 욕을 하며 일행이 아닌척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어서 빨리 다음 역이 오기만을 기도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너무나 창피해서 머리로 지하철 유리를 깨고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다음 역에서 내려 노량진으로 되돌아와보니 친구들이 플랫홈 어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K는 많이 피곤한듯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기분이 우울해진 우리는 K를 집으로 보내고 특강이고 뭐고 술 한잔 더 빨기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달 뒤 수능이 끝나고 또 몇달이 지나 우리는 전국 방방곡곡 각자의 대학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나는 서서히 그들의 존재를 잊어갔고 지금은 그 누구와도 연락되는 이가 없다. 다들 잘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수능 고사, 그 운명의 날이 다가온다.  부디 세상의 모든 재수생들이 분발하여 원하는 점수 받아 원하는 대학에 가기를 기원한다. 고3 수험생분들이 서운해도 할수 없다.
 
가재는 게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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