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찌질송이란?

 

말 그대로 가사가 매우 찌질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키는 노래를 일컫는다. 여성 뮤지션보다는 주로 남성 뮤지션의 음악에서 찾아 들을 수 있으며, 얼마나 개처럼 차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를 원망하지 않고 순정을 지키며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가에 따라 찌질의 정도가 결정된다. 주로 90년대 초중반에 탄생한 싱어송라이터 집단의 앨범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음악 경향이다.

 

대표곡: 015B '텅빈 거리에서', 윤종신 '일년', 이승환 '천일동안', TOY '얼마나 아름다운지', 김동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역사고증학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찌질송이 하나의 경향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90년대 초반입니다.

다름 아닌 찌질송계의 천지창조 015B의 정석원님에 의해서죠.

물론 그전까지 대한민국 가요에 찌질한 노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석원의 찌질송 이후에야 비로소 찌질송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의 찌질한 감수성에 감화된 수제자들(이승환, 윤종신, 유희열, 김동률, 정지찬, 박진영 등)은 찌질송이 하나의 확고한 사조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하지요.

 

박진영이 찌질송 계열에 들어간다는 것에 놀라는 분들 많으실 줄 압니다. 하지만 그의 이별 노래 가사를 잘 들어보십시오. 그런 상 찌질이가 또 없습니다. -_-; 또한 정석원과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한 이승환을 정석원의 수제자로 언급한 것에 의아해하시는 분도 있으실 줄 압니다만, 이승환의 경우 정규 1,2,3집과 정석원이 프로듀스한 4집 이후의 가사 스타일이 많이 다릅니다. 3집까지는 오태호나 김광진 류의 잔잔한 애수가 전반적 경향이라면 4집부터는 그냥 막 찌질대는 가사로 점철되죠.-

여기서 잠깐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찌질함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잠깐만 다루고 넘어가겠습니다. 그것은 90년대 처음 등장한 '신세대'라는 개념과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신세대란 무엇이냐? 아 넘 지겹죠? 저도 쓰기 좀 귀찮네요 -_-; 그래서 자세한 언급은 회피하고 -_-; 하여간에 신세대의 특징 중 하나인 '유니섹스'로부터 찌질송이 파생되었다고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80년대까지는 '남자는 무조건 남자답게, 여자는 무조건 여자답게'가 대한민국 성 역할 정의의 요체였습니다. 해서 남자는 슬퍼도 안 울고,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은 여성들이나 하는 짓이고, 가끔 주먹다짐 정도는 해줘야 진정한 수컷으로 인정받았죠. 그러던 것이 90년대 신세대들이 나타나면서 남성의 성 정체성의 의미가 조금 달라집니다. 남자라도 슬플 땐 울 수 있고, 머리에 무스 정도 발라주는 것은 기본이고,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자연스러운, 그런 양성의 특징을 고루 갖춘 존재로 사회에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90년대 청년층, 특히 대학생 층을 가리킨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지요. 격한 표현으로 '90년대 소심한 대삐리 남성들'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정석원의 가사는 이런 여성성의 특징들이 적절하게 가미된, 변화된 남성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남자지만 여자친구한테 차였다고 세상 다 끝난 것처럼 징징대는 노래가 세상에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지요. 015B의 대성공을 두고 여러 가지 썰들이 많았지만, 당시 신세대들의 변화된 정서를 그들의 눈 높이에서 대변하였기 때문이라는 썰은 사실에 가까운 진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 욕구'와 관련하여 음악적인 면도 다루고는 싶은데 너무 귀찮네요. -_-;)

그러니까 90년대 찌질송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은 데는 정석원이라는 걸출한 찌질남의 -_-; 공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런 찌질송의 탄생을 간절히 원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면 맞을 겁니다. 그렇게 찌질송을 소비하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그의 수제자들은 세련된 찌질송을 시장에 계속 공급함으로써 먹고 잘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죠.

요즘 간혹 회자되는 토이남도 90년대 신세대 문화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우리 혈님이 워낙에 시대를 창조하는 분인지라 홀로 '갑툭튀' 했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르지만, 모든 현상에는 원인과 기원이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근데 아 서론이 너무 길군요, -_-; 고작 전 세계에서 가장 찌질한 노래 한 곡 소개하는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줄 몰랐습니다. 유식한 게 이리도 큰 죄일 줄은 -_-;

그럼 본론으로 살짝 돌아가서, 찌질계의 창조자는 정석원입니다. 하지만 그의 수제자들은 가히 청출어람이란 게 무엇인지 보여주지요.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는 윤종신입니다. 그리고 가장 세련된 찌질함을 보여주는 것은 유희열입니다. -왜 그런지는 길게 쓰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패스-

하지만 사람 자체가 찌질한 것은 바로 김동률입니다. -_-;

정석원, 이승환, 윤종신, 유희열, 정지찬, 박진영 등 찌질송으로 대표되는 뮤지션들 가사를 보면 약간의 계산이랄까 의도된 찌질함이 약간씩 엿보이는 반면, 김동률의 가사는 순수한 찌질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 김동률 음반 씨디로만 5장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안티 아닙니다.-

그냥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진심을 노래로 세상에 드러냈을 뿐인데, 그게 세상에서 가장 찌질할 뿐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찌질함. 사람 자체가 찌질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찌질함이라는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님은 알고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좋게 말하면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애틋한 감수성이요, 나쁘게 말하면.... 어 그냥 찌질하다는 이야기지요. -_-;

우야든동 그런 내츄럴 찌질이 -_-; 김동률의 노래 중에서도 가장 찌질한 노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하고 싶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찌질한 노래 김동률 1집 수록곡 '동반자'입니다.

이 노래가 왜 가장 찌질한 지는 구구절절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쓰느라고 상당히 지쳤습니다. -_-; 그저 다음 가사를 보시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실 거예요.

 

 

긴 세월 지나 그대 흔적 잃어도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살아만 준 데도
그것만으로도 난 바랄 게 없지만

행여라도 그대의 마지막 날에
미처 나의 이름을 잊지 못했다면
나즈막이 불러주오
                                                             - 김동률 '동반자' 中 -


상상해 보십시오. 한 할머니가 천수를 다 누리고 지금 운명 직전에 계십니다. 주위에는 남편, 자식들 그리고 손자들이 훌쩍거리며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있지요. 이때 할머니께서 갑자기 입을 오물거리다가 탄식처럼 한마디 내뱉으며 눈을 감으십니다.

동률아...

 

 

-_-;



이게 가당키나 바람입니까? 임종을 지켜보던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충격을 받고 얼굴색이 흙색이 남편분과 대체 동률이가 누구냐며 웅성대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네요.

그러나 우리의 률님은 이런 시츄에이션을 원한다고 온 진심을 담아 간절히 노래하신 것입니다.

....

혹시 더 찌질한 노래를 알고 계신가요?

 

없으시다면 위너는 제가 먹겠습니다.

그럼 (__)

p.s.1
2000년대 들어서 들을 만한 찌질송들이 많이 사라진 이유는, 대중음악 제작자들이 기획사 주도형 가수들을 선호함으로써 싱어송라이터들이 사멸의 길로 접어든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넓게 보자면 들을 만한 주류 가요가 사라진 이유와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네요.)

p.s.2
혈님을 좋아하신지 얼마 안되고, 시간이 좀 한가하신 분들은 토이 1집과 2집 이후 작업물들의 가사를 유심히 비교해 보세요. 정석원, 윤종신을 만나기 전 그의 가사 스타일과 그들을 만나서 본격적으로 꼬드김을 당한 후의 -_-; 가사 스타일이 꽤 차이가 나는 걸 확인할 수 있으실 거예요.

p.s.3
가사가 가장 찌질한 가수는 김동률이지만, 노래를 가장 찌질하게 부르는 가수는 정재형입니다. -_-; 그의 솔로 2집을 한 번 들어보세요. 노래를 정말 징징징 울면서 부릅니다. -_-;


p.s. 4
차세대 찌질송 뮤지션으로 가장 기대되는 팀은 '루싸이트 토끼'입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찌질송에 발을 담근 것도 아닌데, 가사와 멜로디에서 풍기는 찌질 포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 '꿈에선 놀아줘'에서 드러나는 타고난 저자세의 기백은 가히 여성 찌질송계의 신성 탄생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찌질송을 즐겨 들으시는 분들은 그녀들의 행보에 주목해 주세요.

p.s.5
가만히 생각해보니 진정한 의미의 찌질한 노래 대마왕이신 동물원 출신 김창기님을 언급하는 걸 잊었군요. -_-; 사실 정석원님이나 김동률님도 김창기님 앞에서는 찌질계의 조족지혈에 불과하죠. -_-; 특히 김창기님이 '꿈의 대화'를 부른 이범용님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듀오 '창고' 앨범에서 부르신 '난 이제 예전의 내가 아냐'는 찌질한 노래의 최극단이라 아니 할 수 없는 노래입니다. 가사를 읽으면서 노래를 듣다보면 진짜 결혼도 하신 분이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불러도 되나 걱정이 들 정도로 찌질의 끝을 보여주죠. -_-; 궁금하신 분은 한 번 찾아서 들어보세요.

 

이젠 정말 끝 (__)

 

  1. 날달걀 2010/06/10 23:37 답글수정삭제

    nice job well done!

  2. 이런이런 2010/07/19 08:55 답글수정삭제

    김동률 노래 찌질 이란 검색어로 타고타고 들어와서 아주 박장대소하면서 읽었습니다. 여자입장에서 구 남친이 김동률 노래 가사처럼 굴면 죽빵을 갈기고 싶죠!!! 저는 김동률 노래 대부분은 "본격 구 여친한테 찌질거리는 노래"라고 부릅니다. 어찌됐던 김동률의 목소리와 노래는 그래도 좋아요.

    • 사슴눈 2010/07/19 16:11 수정삭제

      검색 유입어를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네요 ^^;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 갖으셨다니 다행입니다. (__) 구 남친이 자신에 대한 집착을 못버리고 찌질대는 것도 짜증나지만 현 여친 앞에서 김동률 노래 부르며 회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는다면 그 구 남친은 그저 돌림죽빵의 대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겠죠;;; 그럴 땐 마음껏 갈기삼 (__)

  3. GraceDoc 2010/07/31 09:37 수정삭제

    제가 듣기엔 신승훈 목소리가 제일 찌질했는데..-_-;
    동률씬 그래도 호소력이라도 있지..ㅋ
    보이지 않게 사랑할거야 등등.. 이건 왜이렇게 슬프지도 않고, 징징댈까..
    중딩때 들으면서 그랬더랬죠..ㅋㅋ

    • 사슴눈 2010/07/31 10:28 수정삭제

      후후후 그러셨군요. 저도 당시 신승훈의 노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데로 별로 슬프지도 않는데 왜 이리 오바할까... 그정도 느낌이었죠. 오히려 신승훈은 요즘 내는 앨범이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혹시 흑인 음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신승훈의 가장 최근 미니 앨범을 한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라고 말씀드려봤자 중학교 때도 별로 안좋아했던 가수를 지금 굳이 찾아들으실 가능성은 별로 없네요;;;; 우야든동 리플 달아주셔서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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