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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28, 2008

교포가 되어 간다는 것

2002년 4월 17일, 이 날은 아마 내가 관속에 눞는 그 날까지 잊지 못하는 날일 것이다. 아마 내 생일과 함께 내 유전자에 박혀 버린 날짜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 날 나는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추정되는 (이 부분의 기억은 정확지 않다) 비행기를 타고 이민 가방 4개를 들고 버지니아의 노폭이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된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허밍버드라는 캐나다에 있는 중견 소프트웨어 회사의 한국 지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본사 직원으로 취업이 된 상태였다. 직책은 SQE. 매니저는 영국의 런던에 홈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아시아 퍼시픽 담당 디렉터였다. 이 회사를 다니는 게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출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고, 본사 직원이라는 자부심, 영어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직속 상사가 영국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2001년에 35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연봉은 나를 한껏 우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잠깐 시간을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2000년경(1999년 일 수도 있다) 한참 닷컴 버블로 열병을 앓던 시기였다. 모두들 제각기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런 사업 저런 펀딩을 안주 삼는 시대였다. 당연히 나도 주위의 사람들과 비슷한 얘기들을 담배를 피우며, 또는 술을 마시며 나누었던 것이다.

다시 시간을 조금 더 과거로 돌리면, 아마 1999년 쯤 일텐데, L&H라는 벨기에 회사를 다닐 때였다. (이 회사는 분식 회계로 나중 에 공중분회되었다.) 특이하게도 Sun에서 벤더 교육을 한다고 중국으로 초대를 하였고, L&H도 물론 그 중에 하나였다. 나와 동료직원 한 명은 베이징에서 3일 쯤을 묵었는데, 그 때 미국에 있는 벤더인 Jubilee Tech 이란 회사에도 프로덕션 매니저를 보냈었다. 이 분히 한국분이였는데, 비슷한 레벨(?)의 회사에서 나온 직원들끼리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분과 연락처를 주고 받았고, 그 당시에 그 분이 참 멋있게 보여서 나름 쫄래쫄래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닷컴 열품에 싸인 소수의 일당들은 작당모의를 하게 되는데, 그 때 나온 얘기가, 창업 후에 삼성전자와 이 Jubilee tech를 재물(?)로 삼아서 회사를 만들자고 합의를 보았다. 그래서 연락책 역활은 내가 맡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 분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일을 도와주는 건 좀 힘들겠지만, 미국에 사람이 필요하니 내가 직접 와서 일하면 어떻겠냐는 회신이 돌아왔다.

그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내 기분을 추측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는 내 기억력이 아쉬울 뿐이다.


Wednesday, October 8, 2008

빠리의 시장통

친한 친구가 빠리에 장기 출장을 다녀왔단다. 그 증거(?)라고 사진 몇 장 보내왔는데, 다 시장통 사진이였다. 예쁜 여자 사진보다 먹을 거 사진에 더 침을 흘리게 되는 걸 봐서 이 친구나 나나 다 나이 먹어 가고 있단 소리.

사슴눈의 열혈 블로깅 불투기에 죄스러운 맘이 없지 않았으나, 친구의 사진으로 포스트 하나 채우고 만다.

(이거 꼭 숙제하는 기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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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2, 2008

공산당 선언

사랑하는 나의 친구를 위해 나 기꺼이 따다 붙이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잘 보시게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17)와 기조(18),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반정부당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또 반정부당치고, 더 진보적인 반정부당이나 반동적인 적들에 대해 거꾸로 공산주의라고 낙인 찍으며 비난한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들에게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 공산주의자들이 전세계를 향해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경향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을 당 자체의 선언으로 대치해야 할 절호의 시기가 닥쳐왔다.

이러한 목적으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 모여서 다음과 같은 『선언』 을 입안하고 그것을 영어, 프랑스 어, 독일어, 이탈리아 어, 플랑드르 어와 덴마크 어로 발간한다.

(이하 중략)

독일은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에 있기 때문에, 더구나 17세기의 영국이나 18세기의 프랑스보다 훨씬 더 발전한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지고 유럽 문명 전체가 한층 발전한 조건에서 이 변혁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주로 독일에 주의를 돌린다.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곧바로 이어질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직접적인 서막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하는 사회 정치 제도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러한 모든 운동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소유 문제가 더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느냐 덜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느냐를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운동의 근본 문제로 앞에 내세운다.

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나라 민주주의 정당의 단결과 협력을 위해 어디서나 애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